[중앙방송, 박노일기자] 지난 6월 인명피해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의 과거 소방시설 자체점검 결과 이상이 없었다고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또한, 지난 8월 화재가 발생한 부천 숙박업소 역시 자체소방점검이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소방시설 자체점검이 점검대상 10곳 중 3곳에서만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국회의원(대전 대덕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 소방시설 자체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48만여 개의 특정소방대상물 가운데 42만 개인 29%만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시설 자체점검이란 '소방시설법'에 따라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된 시설 또는 건물에 대하여 소방시설 점검 관리업자 등을 통해 연 2회 점검을 하고, 그 결과를 담당 소방서로 제출해야 하는 점검이다. 현재 아파트,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 등이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되고 있다.
각 시도 소방본부별로 확인한 결과, 창원소방본부가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3년 연속 12%를 기록하여 가장 낮은 실시율을 보였다. 뒤이어 강원 15%를, 충남과 대구가 각각 18%의 실시율을 보였다. 반면, 인천과 울산, 제주의 경우 지난해 자체점검 실시율 50% 이상을 기록했다.
시설 종류로 살펴보면 ▲가스저장시설 등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 ▲물류창고 등 창고시설 ▲축사와 식물재배 시설 등 동ㆍ식물관련 시설 ▲국가유산 시설의 자체점검 실시율이 낮았다. 네 시설 모두 실시율이 10% 미만이었다.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의 경우, 2021년 3.8%, 2022년 3.7%, 2023년 3.3%를 기록했다. 특히 경기 북부 지역의 경우, 2023년 기준 가스저장시설 등이 1,400여 개가 있으나, 점검은 11곳, 0.8%에 불과했다. 충북 역시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의 자체점검률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0.5%를 넘기지 못했다.
택배사 물류 터미널 등 창고시설의 경우, 지난해 5.9%의 자체점검 실시율을 보였다. 특히 충남의 경우에는 5,400여 개의 창고시설 중 매년 200 ~ 300여 개만 실시해 자체점검 실시율이 3년간 3%를 넘지 못했다. 경남 역시 16,500여 개의 시설 중 500여 개만 자체점검을 시행해 매년 5%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축사와 식물재배시설 등 동ㆍ식물관련 시설은 2021년 1%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0.7%로 떨어졌다. 1000곳 중 7곳만 점검했다. 대전의 경우 3년간 150여 개의 시설 중 1곳만 실시했다.
국가유산 역시 자체점검 실시대상이나, 자체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 울산과 세종의 경우, 소방시설 자체점검 대상 국가유산이 각각 13개가 있으나, 지난 3년간 단 한 개의 유산도 자체점검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창원 역시 37곳 중 단 한 곳도 자체점검을 시행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자체점검을 건물 관계인의 자유의사에 맡겨둔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서는 건물 관계인이 제출한 문서로만 특정소방대상물의 안전을 확인할 뿐 따로 현장에 나가지 않고 있다. 소방관이 제출한 문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야 현장을 방문한다.
실제로 소방청에서 2022년 9월, 전국 소방시설 자체점검 대상 190개소를 실시한 ‘소방시설 자체점검 대상 표본조사’에서 79개소에서 94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소방시설 자체점검 결과 총 1,518명이 입건되고, 4910건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처분받은 과태료는 총 403억 원이었는데, 지난해가 186억 원으로 전체 46%를 차지했다.
한편 화재안전조사 실시율도 턱없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정현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 화재안전조사 실시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전국 평균 3.7%였던 화재안전조사 실시율은 2023년 5.8%를 기록한 뒤 올해 7월까지 5.1%를 기록했다.
화재안전조사란, '화재예방법'에 따라 ▲자체점검 불성실 또는 불완전한 곳 ▲화재 예방강화지구로 선정된 곳 ▲화재가 자주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큰 곳 등에 대해 소방서장의 판단에 따라 실시할 수 있는 소방조사이다.
지난해 화재안전조사 실시율이 가장 낮은 지자체는 제주와 서울이었다. 제주는 전체 17,515곳 중 2,761곳을 실시해 1.9%의 실시율을 보였으며, 서울은 210,550곳 중 4,194곳을 실시해 2%의 실시율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화재안전조사의 실시율이 낮은 이유를 소방관서장이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임의규정’인 성격과 함께, 만성적으로 부족한 화재안전조사 인력 문제를 꼽는다. 실제로 경기도의 경우, 담당 지역과 인구밀집도, 관련 시설이 많아 화재안전조사 실시율이 매년 5%의 문턱을 넘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박정현 의원은 “시민들의 이용이 많은 시설에 대한 자체점검마저 ‘자기 책임’이라는 명목 아래 자율로 맡겨놨지만, 실시율이 상당히 저조하다. 그런데 이를 보완할 ‘화재안전조사’는 소방서장의 필요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정해져 있고 이마저도 실시율이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라고 말하면서, “아리셀 공장화재나 부천 숙박업소 화재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자체점검과 화재안전조사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