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방송, 김지효기자] ‘고강도, 높게 강하게 도전하라!’
대한민국의 태극낭자들이 2015년 캐나다 월드컵 16강 신화 재현에 나선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축구 대표팀이 오는 7월 25일(한국시간) 콜롬비아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2023 FIFA 여자 월드컵 여정을 시작한다. 여정에 앞서 월드컵에 나서는 23명 태극낭자들의 각양각색 도전기를 소개한다.
막내 골키퍼가 주전으로? 2003 미국 월드컵의 기억
20년에 걸친 대표팀 생활 끝에 세 번째 월드컵을 준비한다. 2003 미국 월드컵에서 막내 골키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정미는 20년이 지난 2023년에도 변함없이 대표팀의 골문을 지키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어요. 뭐랄까.. 꿈이 이뤄진 것 같고 되게 벅찼어요. 내가 어떻게 대표팀에 올 수 있지 생각도 했고, 언니들이 앞으로 ‘너 어떻게 해야 한다’ 얘기도 해줬고요. 언니들이 마냥 멋있어 보여서 따라만 다녔던 것 같아요.”
여자 축구 대표팀 사상 최초의 월드컵 티켓을 따냈던 2003 AFC 여자 선수권대회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한국은 3-4위전에서 황인선의 결승골에 힘입어 일본을 꺾고, 대회 3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따냈다.
“중국, 북한, 일본 등 아시아 팀들이 여자 축구를 평정할 때였어요. 쑨웬이 있었던 중국은 월드컵에 나가면 우승이나 준우승을 다투는 나라였고요. 그만큼 아시아에서 월드컵 나가는 게 어려웠죠. 3-4위전에서 황인선 감독님의 골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었을 때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막내 골키퍼로 출전한 2003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했다. 브라질, 프랑스, 노르웨이를 상대한 한국은 첫 도전을 3전 3패로 마무리했다.
“제가 어떻게 선발로 뛰었을까요? 선생님들한테 다시 물어보고 싶어요(웃음). 아무래도 신체 조건이 좋아서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요. 겁도 없었고, 젊은 패기와 열정이 어필됐던 것 같습니다.”
12년 만에 다시 밟은 월드컵 무대, 캐나다의 기적
2003 미국 월드컵 이후 한국은 12년간 여자 월드컵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지소연을 필두로 2010 FIFA U-20 월드컵에서 3위, 여민지를 중심으로 2010 FIFA U-17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여자 축구의 황금세대를 구축했다. 당시 멤버들이 주축이 된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서는 여자 축구대표팀 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다.
“2003년에는 모든 게 처음이라 열심히 준비만 했고요. 2015년에는 선수들끼리 합이 좋았고, 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2019년에는 최종 소집 훈련 명단에 들었는데,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부상으로 빠졌죠. 속상해서 울기보다는 현실을 빨리 받아들였고, 애들 응원하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벨 감독 부임 후 다시 찾아온 기회
2019년 프랑스 월드컵 직전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김정미는 이후 한동안 대표팀을 떠나 있었다. 선수 생명에 지장이 갈 수 있는 아킬레스 부상이었고, 내심 대표팀 은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2020년 10월 벨 감독은 묵묵히 재활에 힘쓰고 있던 김정미를 대표팀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감독님 부름을 받고 다시 대표팀에 왔을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고 선수 생명이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나이에 다쳤기 때문에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요. 감독님이 저를 뽑으시면서 ‘나이는 상관없다’는 말씀을 하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2003, 2015, 2019년 모두 준비해 봤지만, 그 때와는 확연히 달라요.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모든 게 간절해지거든요. 힘든 훈련을 해도 투정 부리거나 불만을 얘기하기보다 자진해서 한번 재밌게 해보자, 힘들지만 끝까지 해보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와요.”
“감독님이 고강도, 고강도 하시지만 풀어줄 때는 확실하게 쉴 시간을 주세요. 정말 열심히 했을 때 커피를 사주신다든지, 오전 훈련 마치고 오후 훈련은 휴식을 주면서 내일 파이팅 하자고 한다든지.. 선수들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세요. 어떨 때 보면 ‘도사’ 같아요.”
’맏언니’도 피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열정은 그대로예요. 맏언니가 된 지는 벌써 10년 언저리가 되어 가고요. 이번에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이 합류했잖아요? 언니들 기에 많이 눌릴 법도 한데 안 그래요. 역시 요즘 MZ는 다르더라고요(웃음). 자기 실력을 뽐내려 하고, 무슨 훈련하는지 빨리 캐치하려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물어봐요.”
골키퍼 윤영글과는 대표팀에서 번갈아 출장하며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지난 8일 아이티와의 월드컵 출정식 경기에서도 전반은 김정미, 후반은 윤영글이 소화했다. 콜린 벨 감독은 이 둘 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감독님이 잘 끌어내신다고 생각해요. 경쟁 구도를 가져가면서 너희 둘은 너무 좋은 선수다 강조하시고, 동시에 경쟁할 수 있게 해요. 누구 하나 당연하게 월드컵에 가는 선수는 없다 보니, 더 긴장하고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성실함을 바탕으로 준비하는 마지막 월드컵
A매치 136경기에 출장한 김정미는 남녀 축구 통산 최다 출장 공동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만 18세에 데뷔해 약 20년간 쌓아 온 대표팀 출전 기록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에서 비롯됐다.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성실한 선수, 열정이 절대 식지 않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본 훈련 전에도 보강 훈련을 한다든지, 따로 시간을 내 개인 운동을 하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삶이 골키퍼란 포지션에 맞춰져 있어서, 술도 안 먹고, 쉬는 날에도 웬만하면 건강한 음식 위주로 먹어요. 취침하는 것도, 쉬는 것도, 훈련하는 것까지 지금까지 해왔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이번 월드컵을 위해 4년을 달려왔는데, 전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 가는 게 목표고요.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겨낸다는 강한 마음이 있다면 똘똘 뭉쳐서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